12·12사태 주도 하나회 명단과 사진, 하나회 숙청 배경

영화 서울의 봄 보셨나요?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과 극도의 분노감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12·12사태 주도 하나회 명단과 사진, 하나회 숙청 배경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12사태 주도 하나회 명단과 사진, 하나회 숙청 배경

 

 

◎12·12사태 주도 하나회 명단과 사진

하나회는 1963년에 전두환, 정호용, 노태우, 김복동 등 대한민국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된 군대 내의 불법 사조직이었습니다. 이 조직은 군 내부에서 권력을 행사하며 군사 정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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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명단과 사진

  • 전두환: 전두환은 하나회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으며, 그는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를 주도하였습니다.
  • 정호용: 정호용 역시 하나회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 노태우: 노태우는 하나회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으며, 그는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를 주도하였습니다.
  • 김복동: 김복동은 하나회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으며, 그는 하나회의 초기 구성원 중 하나였습니다.
12.12사태 주도 하나회 명단과 사진, 하나회 숙청 배경
출처 -sbs

 

 

영화 서울의 봄 실제 역사 이야기





 

 

●12·12 군사 반란

12·12 군사 반란은 19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사건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김진기 육군 헌병감 등을 체포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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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뒤,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하였습니다.
정승화는 군 장악을 위해 윤성민 (참모차장), 장태완 (수경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을 중용하여 지휘계통을 개편하였으며, 10·26 사태에 직접 연루되었던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을 축소 개편하였습니다.
이로써 정승화는 군에 대한 지휘체계를 확보하고 자신이 정치 일정을 이끌어 가는 데 핵심역할을 담당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군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4년제 육군사관학교 최초의 기수인 11기의 지도 아래 하나의 배타적인 파벌집단을 형성하면서 군부내 세력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갈등을 일으키게 한 대립의 쟁점은 사건수사와 군의 인사문제였습니다.
전두환 합수부장의 지시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제33헌병대 병력 65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뒤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로 연행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군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1980년 5월에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가 5·17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군부정권인 제 5공화국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회 숙청 배경

●하나회의 결성과 활동

하나회의 시초는 1958년 육사 11기생인 영남 출신의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7명이 친목모임으로 만든 ‘칠성회 (七星會)’였습니다. 이들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군부 요직을 장악했으며, 1962년 ‘하나회’로 조직을 확대했습니다.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에 충성을 맹세하며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세력이 되었고, 서로에 대해 “형님”이라는 암호명으로 서로가 태훈회 멤버임을 과시했습니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점거하여 승진이나 자리 이동 때 선배가 후배를 추천하고 밀어주는 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하였습니다.





 

●하나회 숙청

하나회의 숙청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하나회를 두고 고민하였으며, 특히 국방부장관으로 생각하고 있던 예비역 소장 출신인 권영해 국방부차관으로부터 “하나회를 숙청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계속 들어왔습니다. 이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에서 공식적인 직책에 있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철저히 비선 조직을 통해 하나회 숙청 계획을 짰습니다.

하나회의 숙청은 군부 정치를 일소하고 문민 통제를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해 단행한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책임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 등 관련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하나회의 숙청은 대한민국 군사 역사에서 중요한 단면으로, 그 이후로 군부의 정치 개입을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마무리

지금까지 12·12사태 주도 하나회 명단과 사진, 하나회 숙청 배경 등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대부분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꼭 영화 ‘서울의 봄’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영화 내내 분노 유발로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역사를 아는 것이 미래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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